2005년 5월 어느날 야구에 푹 빠져있던 한 아이가 프로야구&퓨처스리그에 이어 이제는 고교야구를 정복해보고 싶다며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동대문 야구장에 입성했다. 매표소에서 구입한 티켓은 프로의 그것과는 다르게 참으로 어설퍼 보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첫 게임인만큼 설레임을 가지고 야구장에 들어섰고,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퀘퀘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와중에도 꿈나무들의 야구하는 모습을 대견스럽게 바라보곤 했다.
사실 이 아이는 야구장에 들어서자마자 신기하게 바라보는 많은 눈초리들때문에 지레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던 것이 예전에야 고교야구가 인기가 있었지, 이 당시는 프로야구도 한참 암흑기였으니 고교야구는 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나이 드신 분들이나 선수들 학부모님들이 거의;;) 앳띤 여자애 혼자 와서 앞쪽에 앉아 셔터를 눌러대며 경기를 보고 있었으니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 있으랴...... 조금 멋쩍어하기도 하고, 쑥쓰러움을 느낀 이 아이는 그래도 그 시선을 즐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준결승, 결승전이 열리는 날에는 해당 학교 동문들이나 재학생들이 와서 좀 덜하긴 했지만 그 외의 날에는 경기장에서 뛰는 어린 선수들조차 신기하게 바라보곤 했으니까.....
그래도 이 아이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경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그 당시 응원했던 선수때문에 광주일고를 관심있게 바라봐왔고, 결국 광주일고를 응원하게 되었는데 그 중에 유독 눈에 띈 한 녀석이 있었다. 선발투수로 출전한 그는 위기 상황에서는 1루를 봤던 선수에게 바통을 넘겨주고, 본인은 포수 장비를 착용한 후 포수 자리로 들어갔으며 위기 상황이 끝나면 다시 마운드로 올라가기 일쑤였다. 만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직접 봤던 이 아이는 정말 많이 놀랐고, 그의 이름이 머릿 속에 각인될 수 밖에 없었다. '저런 선수도 있구나, 정말 능력있는 선수인가보네' 란 생각을 하며......
그렇게 그 당시 광주일고 경기를 보러 자주 찾았던 이 아이는 설마 이 선수가 본인의 프로 응원팀에 오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던 것 같다. 박진만이 빠진 자리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 광주일고 유격수는 현재 SK 유격수로 뛰고 있는 그 선수였기 때문에 이 쪽이 더 가능성이 높으리라 생각했으니까......
2차지명일이 다가오면서 이 아이가 처음 눈여겨봤던 저 능력있는 선수가 본인의 프로 응원팀에 오리라는 아야사발 루머를 접했고, 적잖이 놀라면서도 제발 그렇게 되기를 빌었다. 사회생활 초년생이었던 이 아이는 업무를 하면서 몰래몰래 2차지명을 지켜봤고, 정말 소문대로 그가 본인의 응원팀에 선택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앞으로 열심히 응원해주리라 결심하며!!!
하지만 이 아이는 그를 결심처럼 열심히 응원해주지는 못했었다. 의리때문에 원래 응원해준 선수를 떠나지 못하기도 했고, 프로 입단한 첫 해 개막전부터 그가 선발 유격수로 출전하며 실수를 해서 마음의 위안을 주고자 한번 찾아갔었다가 그가 이 아이를 너무 당황시킨 것이다. 그냥 힘내라며 간식거리 하나 안겨줬을 뿐인데 귀까지 시뻘개지며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모습을 보노라니 그 아이는 뭔가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 멀리 떨어져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성격을 잘 알게 되었고, 본인도 차츰 성격이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를 추억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서로 성격이 수더분하지 않을 때라 그런지 유연성있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아이는 퓨처스리그(당시는 2군 경기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를 자주 찾아서 그가 잘하고 있는지 체크하고 있었고, 사진도 계속 찍어가며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고 있었는데 2년이 지난 2008년 어느날 당시 유명했던 SNS에서 간단하지만 뼈가 있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완전히 그의 팬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난생 처음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고(베이징 올림픽) 그에게 아무 생각없이 "같이 갈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걸"이라고 자랑했는데 돌아왔던 대답이 정말 가고 싶어했던 그런 뉘앙스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아이는 너무 미안한 나머지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고 했었고, 그는 2년이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선발로 그 약속을 지켰다.
너무나 감동을 받았던 이 아이는 그를 위해 가족에게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홀로 광저우 여행을 감행했고, 그는 정말 좋은 성적으로 보답했다. 11박 12일 일정이 정말 헛되지 않았고, 한국에 돌아온 이 아이는 넘쳐나는 스포츠지 메인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정호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난 정호가 여기서 계속 성장해준다면 MLB에 진출할 유일한 position player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고, 그것을 위해 이 녀석을 무던히도 비판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팬이 아닌 까였으니까......
2008년 주전 유격수로 자리잡으며 보였던 문제점은 3-유간 수비 범위에 비해 2-유간 수비범위가 좁았었기에 그 부분을 비판했었고, 이후에는 너무 당겨치기 일변도로 인해 타율을 깍아먹어서 상황에 따른 타격을 했으면 하는 바람, 풋워크&대쉬플레이의 불균형 및 어색함, 작년 벌크업으로 인한 순발력과 유연성 부족, 타석에서의 심리적인 부분 등등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서슴없이 비판만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야구를 직접 하는 아마추어 팬이 뭘 알겠냐만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어떤 것이든)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고, 어떤 것이 문제일까 분석해보다보니 저런 점들이 보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부분을 직접 이야기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이렇게 내 나름대로의 공간에다 적어놓거나 가끔 편지에만 써줬던 듯 한데 이 녀석이 그래도 내 블로그를 꾸준히 보고, 편지 내용도 잘 받아들였던 것인지, 아니면 본인 생각도 나와 같았던 것인지 점차 보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난 이 녀석이 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이야기를 듣기 싫어서 칭찬도 거의 해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문제해결능력은 거의 탑을 다투는 녀석이고, 그만큼 영리하고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정호는 목표를 이루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말로 빅리그 진출이 가능할지는 장담할 순 없었던 것이 예전 마쓰이 가즈오(2루수론 성공했다고 하지만)부터 니시오카 츠요시, 나카지마 히로유키, 가와사키 무네노리까지 아시아 출신 미들 인필더에게 회의적인 시선이 컸다.
그렇다고 해도 정호는 그 선수들과 다른 피지컬과 다른 스타일을 가진 미들 인필더라는 점에서 조금은 희망을 걸어봤고, 내가 알고 있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보다도 더 먼저 2013 WBC 부터 지켜본 팀이 정호를 선택했다. 어찌보면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봤던 나를 비롯한 팬들이 정호에게 봐왔던 모습을 벅스 스카우트도 봤다는 이야기고, 걱정과는 달리 연봉 협상도 순조롭게 되었다.
연봉 협상이 끝난 후 처음으로 홀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 이후에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복받쳐오르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고, 그래서 달력 마무리도 조금 늦어진 것이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나름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왔던 old fan이고, 어찌보면 가족은 아니어도 정말 친누나같은 마음으로 응원해와서 그런지 너무 대견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물가에 어린 막내 동생 내놓는 기분까지 느껴졌다. 아마 정호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생각보다 이 녀석을 많이 아끼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이 녀석은 최종 목표까지는 아니지만 그 길을 갈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해둔 셈이 되었다. 내가 이 녀석에게 기대했던 그 모습을 정말로 실현시켜주고 있는 고마운 녀석이고, 더 어려운 과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에이전트가 쿠바 선수였다면 1억불은 받았을 것이란 뻥카가 뻥카가 아님을 믿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난 정호가 어떤 식으로 위기를 대처하고 이겨내 왔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리고 나름 선수의 능력치 보는 눈이 없지는 않아서 지금보다 더 큰 선수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면 정호는 아직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다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희망치가 아니고, 정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실링이 높다.
다만, 이 믿음과는 별개로 정호 본인은 건강 생각하면서 너무나 많은 걸 보여주려고 애쓰지 말고, 하던대로만 하면서 빅리그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 헌팅턴 단장의 말처럼 최소 올해 1년은 어떻게든 기다려 줄 것이고,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널널하게 하란 이야기는 아니고,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일단 준비한만큼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부분은 코칭스태프와 잘 상의하며 보완하다보면 분명 벅스가 우승하는 데 큰 공헌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해나가야할 세부적인 부분은 정호 본인도 잘 알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정리해 볼 것이고, 올해도 역시 MLB TV 결제해서 어느 정도 분석도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이 녀석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볼 것이고, 열심히 응원해줄 것이다. 사실 이번에 플로리다 갈 때 내 나름대로 MLB REPORT를 만들어서 주려고 했으나, 어차피 팀에 요청했으니 다른 방향으로 해보려고 한다. 설사 지금 당장은 도움이 안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미래를 생각하면서......
너무 대견하고 대단한 녀석...!!! 아직 실제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그리고 나도 잘 느끼고 있지는 못했지만 정말 많이 아낀다.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으니 너 자신을 믿고 빅리그에서도 없어선 안될 선수로 성장해주길 바란다.
내 막내동생같은 녀석... 사랑한다 정호야~~!!! (어우.. 오글오글...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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