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믹이 온 지구를 덮친 이후, 대혼돈의 시기를 지나온 많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그렇게 서서히 일상으로 회복되는 과정의 끝은 아마도 해외 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고, 그렇게 4년만에 아이슬란드로 떠나기로 결정을 내렸다.
첫 유럽 여행지로 아이슬란드를 선택한 이유는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흔하지 않은 대자연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영화 「인터스텔라」 나 「베트맨 비긴즈」 에서 본 쓸쓸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외계 행성의 그 분위기를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유럽 대륙에서 첫 발자국을 딛은 곳은 핀란드 헬싱키이지만 고작 몇 시간만 머물렀기 때문에 어중간한 감이 있어보인다.
2023년 9월 23일과 귀국일인 10월 1일 십 여 시간 정도 헬싱키에 머무른 걸 빼고는 9월 24일부터 9월 30일까지 6박 7일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슬란드에서 보냈다. 거의 매번 여행을 갈 때마다 한 두 도시 정도 더 들르는 환승편을 이용하게 되는데 오랜 비행으로 지친 근육과 피로를 풀어줄 겸 보다 합리적인 비용으로 더 많은 곳을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이 참 효율적으로 생각된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어차피 좁은 비행기나 그 좌석 안에서 오랜 시간 버티는 것도 만만치 않다.
팬더믹 이전에는 그나마 아직 젊다고 말할 수 있는 연령이었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본격적인 중년의 시기로 접어들면서 체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신체 나이는 역시 속일 수가 없나보다. 아마도 재작년에 잠깐 쉬러 다녀온 제주도 때부터 패턴이 좀 바뀐 감이 있는 것이 최대한 체력을 보전하려다보니 이제는 진득하게 머무는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관광을 포기할 순 없기에 관광과 휴양을 적절히 접목시킨 일정이라고나 할까.....
#6. 얼음과 불의 나라 아이슬란드 - 스나이펠스네스 (Iceland, The land of Ice and Fire - Snæfellsnes)
September 28, 2023 -- Snæfellsnes in Iceland
레이카비크 외곽으로 떠나는 여행의 마지막날이자 아이슬란드를 떠나기 이틀 전,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날의 여정을 시작했다. 아무래도 3일 연속 이른 오전부터 장장 10시간 이상의 투어를 다닌 것도 그렇고, 나이도 나이인지라 이 행복감 속에서도 피로감 자체는 가려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 날은 아이슬란드의 서쪽 지역을 두루두루 살펴보는 투어였는데 다른 코스와는 성격이 달라 좀 시시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긴 했지만 그 예상은 기우였고, 의외로 매우 인상적인 경험들을 했기에 아직도 이 여운이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
나의 몸상태를 알았는지 이 날 투어를 이끌어줬던 가이드는 뭔가 느긋하게 산책하는 듯한 느낌의 코스를 안내해줬던 것 같다. 처음 도착한 곳은 레이캬비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게르두베르그 절벽(Gerðuberg Cliffs)인데 레이니스파라처럼 7~14m 높이 육각형의 현무암 기둥들이 스나이펠스네스 반도 남쪽 가장자리의 절벽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이 역시도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으로 수 천 년 전, 동일한 유량 속에서 용암이 강을 이루며 절벽에 넘쳐 흘렀는데 바다가 이것을 빠르게 식히면서 이런 모양의 기둥들이 생성되었다고 한다.
이트리퉁가(Ytri Tunga)는 아이슬란드에서 흔하지 않은 백사장 해변으로 바다 표범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샌프란시스코 피어39에서 많이 보긴 했지만 그래도 바다 생물 중 가장 귀여운 동물 중 하나인 바다 표범을 볼 수 없었다는 게 아쉽다. 내가 너무 시간을 의식해서 깊게 들어가지 않아 못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슬란드의 부디르에 위치한 유일한 흑인 교회로 1703년에 지어졌었으나 1816년 붕괴된 적이 있다. 현재 이 곳에 있는 교회는 부디르에 살았던 미망인 스테이눈 스베인스도티르(Steinunn Sveinsdóttir)가 본래 위치와는 조금 다른 곳에서 1848년 재건하였고, 1984년 다시 이전 작업을 펼쳐 묘지와 함께 건물 전체를 현재 이 위치로 옮겼다. 단출하면서도 아담하고 깔끔한 이 검은 교회는 아이슬란드 국립 박물관에서 특별하게 관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르나스타피(Arnarstapi)는 피라미드 모양의 스타파펠(Stapafell) 산 옆에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과거에는 교역지로써 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현재는 몇 채 안되는 집과 관광 안내소, 작은 부두, 조각가 라그나르 캬르탄손의 트롤 조각상 바르두르 스나이펠사스(Bárður Snæfellsás) 정도만 있는 한적한 곳이다.
넓은 화산암 지대로 둘러싸여 있으며, 해안선을 따라 경이로운 화산암 지형과 아름다운 해변이 늘어서있는 곳이다. 북극제비갈매기 서식지도 인근에 위치해 있어, 다양한 바닷새를 볼 수도 있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는 구멍 바위라는 이름의 가트클레트투르(Gatklettur)가 있는데 바위에 아치형의 구멍이 뚫려있어 그 사이로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이 일품이며 1979년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현재는 스나이펠스요쿨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이 때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고 또 잘못해서 길을 잃을까봐 이걸 보고 오지는 않았는데 이것도 좀 아쉽다.
로운트랑가르(Lóndrangar) 절벽은 스나이펠스요쿨 국립공원(snæfellsjökull national park)의 해변에 위치해있고, 수 천 년 전에 형성된 화산성 플러그 지형으로 한 때 큰 분화구였다가 침식 활동으로 인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가장 큰 봉우리의 높이는 75m이고, 작은 봉우리도 61m라 이 곳을 걷다보면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있다. 뭔가 북유럽 신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로 나올 수 있을만한 퍼포먼스를 자랑하고 있는데 그만큼 매우 근사하고 황홀감마저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 곳에 얽힌 민담이 몇 가지 있는데 작은 절벽은 트롤 남편이 굳어져 생긴 곳이며 그의 아내는 해안선을 따라 조금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다고 하고, 다른 설화에서는 큰 절벽이 엘프 교회이며 작은 절벽은 엘프 도서관이라고 전해진다.
남부 해안에 레이니스퍄라 검은 모래 해변이 있다면, 서부 해안에는 듀팔론산두르(Djúpalónssandur) 해변이 있다. '깊은 호수의 모래' 라는 뜻으로 근처에 듀팔론(Djúpalón) 호수가 있다. 이름과는 달리 듀팔론 호수의 수심은 5m 정도에 불과하며 용암 절벽과 검은 모래 해변으로 둘러싸여있다.
해변에 오렌지색 금속 파편이 늘어서있는데 1948년 3월 13일 드리트비크만 동쪽에 난파된 영국의 트롤선 에피네 GY7(Epine GY7)의 잔해라고 한다. 당시 14명의 선원이 사망하고, 5명만이 인근 아이슬란드 구조팀에 의해 구출되어 살아남았다고 한다.
검은 모래 해변과 거센 파도가 매우 매력적인 곳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자연 현상으로 화산암 절벽들이 마모되면서 제각각 모양들의 절벽들과 주위 특이한 지형까지 조화롭게 포진되어 있는 모습이 매우 경이롭고 장엄하게 느껴진 곳이었다.
색스홀 분화구(Saxhóll Crater)는 스나이펠스네스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분화구 중 하나로 100미터 위에 위치해있어 다른 여느 곳보다 들르기 편한 분화구이다. 3000년 전 터진 화산 폭발로 이 분화구가 만들어졌으며 이 주위를 마른 용암원이 둘러싸고 있어 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선홍색 지붕색이 인상적인 잉걀드스홀 교회(Ingjaldshóll Church)는 1350년부터 1550년 헬가펠 화산에 있는 수도원의 소유물이었다. 19세기까지 아이슬란드에서 세번째로 큰 교회였고, 많은 신자수를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곳은 사실 살짝만 찍고 온 곳이었는데 이마저 더 짧은 시간만 있었던 이유는 먼저 온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저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사진을 찍을리도 만무하니 말이다.
이제 스나이펠스네스 반도 여행의 클라이막스인 키르큐펠에 다다랐다. 키르큐펠(Kirkjufell)은 '교회산'이라는 의미를 가진 독특한 모양의 463m 높이 산봉우리로 그룬다르피요르두르(Grundarfjörður) 마을 근교에 있다. 교회 첨탑을 닮았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부여되었는데 꼭대기가 뾰족하고 옆 면이 대칭적으로 곡선을 이루고 있어서 다른 각도에서 봤을 때 마녀의 모자나 아이스크림콘 꼭대기에 비유되기도 한다.
키르큐펠스포스(Kirkjufellsfoss)는 높지는 않은 편이지만 세 개의 계단과 완만한 흐름, 계절에 따른 극적인 차이로 다른 큰 폭포만큼이나 인상적인 느낌을 주며 겨울에는 하얀 설원이 가득해서 더 매력적인 곳이다. 또한 이 곳 역시 왕좌의 게임 시즌 7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스나이펠스네스 반도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바로 이 셀바틀라포스(Selvallafoss) 또는 양의 폭포(Sheep's waterfall)라고 그닥 많이 알려지지는 않은 폭포였다. 이 폭포의 한 쪽은 산, 다른 한 쪽은 셀바틀라바튼 호수(Selvallavatn lake)로 이루어져있어 사진 명소가 되어가고 있는 곳이다.
11미터 높이의 3개의 작은 폭포가 층계처럼 이어져있고, 그 주위로는 침식된 암석의 한 단면에는 이끼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 곳은 사람들에게만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양의 폭포라는 별칭이 있는 만큼 양들이 풀을 뜯기 위해 찾는 완벽한 장소이다.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지는 않고 다소 숨어있는 느낌이다. 주차장에서 언덕을 쭉 내려와야하는데 길지는 않아도 좀 가파른 편이라 무릎이 안 좋은 사람들은 조금 주의를 할 필요는 있고, 중간중간 웅덩이나 수분을 가득 머금은 흙밭도 좀 있어서 신발이 더러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천천히 잘 내려가다보면 컬러풀한 풀들과 꽃, 이끼들이 두 눈을 사로잡는 와중에 깨끗한 호수와 스나이펠스요쿨까지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 수고로움을 단박에 보상해주며 여기서 옆으로 들어가면 셀바틀라포스가 무심한 듯 두 팔 벌려 맞이해주는 느낌을 받는다.
이 아이슬란드 서부 지역 코스는 화려함보다는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솔직히 색스홀 분화구와 셀바틀라포스는 높이가 좀 있어서 힘들긴 했는데 그 외에는 다소 평이한 코스라서 마실 나가듯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여전히 못 가 본 곳이 많아서 다소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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