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엘비 파크에 올린 글(The writing that I post on website 'mlbpark') : http://mlbpark.donga.com/mp/b.php?p=1&b=mlbtown&id=201712170012003289&select=&query=&user=&site=donga.com&reply=&source=&sig=hgj9Gg21i3eRKfX@hcaXGg-g5mlq>
<원글(Raw news) : https://www.mlb.com/rangers/news/chris-martin-comes-home-to-join-rangers/c-263630578>
오늘은 어차피 중요한 소식은 다 올려주셨고, 인상적인 기사가 하나 있어 나름 번역해 봤습니다.
이 냉철한 비즈니스 세계 안에서도 감동적인 스토리(어제 카즈의 트레이드처럼)를 가끔이나마 기대하곤 하는데 오늘은 그런 내용의 기사입니다.
정말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선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사연을 모두 보니 꼭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커집니다.
게다가 텍사스 레인저스의 어릴때부터 팬이고, 로컬보이입니다. ㅜㅜㅜㅜㅜㅜ
부디 크리스 마틴도 또 하나의 NPB의 성공 신화를 쓰길 바라며 이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역시나 제가 영어가 매우 짧은 관계로 오역도 좀 있을 것이고, 매끄럽지 않은 문장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의역하면 그나마 매끄럽게 나오는 게 있는데 원문에 충실하려다보니 이게 더 어렵고 그 뉘앙스까지도 옮겨보려니 힘드네요.
그래서 매우 부정확할 수 있으니 전체적인 내용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he other fans all posted important news today, I've translated in my own way cause there is one impressive article.
Sometimes I used to expect touching story(like Cards' trade) in cold business world, it is an article like that today.
I don't really imagine at all Chris Martin is a player who experienced twists and turns like this, to see all story, I have the wish he certainly becomes very well.
Besides he's a fan of Texas Rangers since he was a child and local boy. T.T T.T T.T
Please wish Chris Martin writes another success story of NPB, I'll post this writing.
But there're a little mistranslation due to lacking my English skill, surely some sentences lack smoothness.
If it translates liberally, a lot of sentences are smooth, but it is more difficult and it struggles to translate including the nuance cause I tried to translate natural sentences as it is.
Therefore it can be so uncertain, so I appreciate you guys see a whole content.)
레인저스 불펜투수로 돌아온 로컬보이 크리스 마틴
- 기복있는 커리어 이후, 알링턴 토박이의 메이저리그 귀환 -
레인저스 우완투수 크리스 마틴은 다시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독립야구팀 그랜드 프레리 에어혹스(Grand Prairie AirHogs) 트라이 아웃에 도전할 등록비가 없었다.
"전 트라이 아웃(하는 곳)에 있었어요." 이번주 금요일, 가장 최근 합류한 팀 불펜 멤버로 그를 소개하는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그는 (그 때를) 회상했다.
"거기엔 100여명의 선수들이 있었죠. 트라이아웃을 하려면 50달러가 있어야 했는데 제 주머니 안에는 그것을 지불할 50달러가 없었어요."
다행히 마틴은 에어혹스 투수 중 한 명이었던 Luke Prihoda(루크 프리호다?)를 알고 있었다. 어깨 부상으로 기회를 잃은 후 창고에서 냉장고를 나르고 트럭을 운전하며 3년이란 시간을 지내기 이전에 그가 얼마나 잘했는지 알고 있었던 프라호다는 그에게 트라이아웃을 제안했던 것이다.
"전 그 여성(아마 접수받던 직원이었던 듯)에게 말했어요. 이것(트라이아웃)을 등록할 수 없었지만 루크 프리호다를 알고 있다고 그녀에게 말했죠."
이것은 2010년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글로브 라이프 파크로부터 고속도로로 15분 거리에 있던 에어혹스는 전 레인저스 외야수 Pete Incaviglia(피트 인캐비글리아?)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팀이었다. 피트는 마틴이 그의 패스트볼을 던지는 걸 봤고, 한편 6피트 7인치의 키에 끌리기도 했다.
"우린 당신이 필요해요." 인캐비글리아가 말했다.
이 트라이아웃은 그의 인생을 바꿨다. Lowe's Home Improvement와 UPS, Texas Appliances를 위해 일한 그의 인생은 이로써 끝났다. 보스턴, 콜로라도, 뉴욕과 일본으로 그를 이끌어준 프로야구의 길로 회귀했고, 지금 그는 그의 홈타운에서 레인저스 저지를 입은 모습으로 자세를 취하고 있다.
31살의 마틴은 이곳에서 태어나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에 의해 2004년 MLB 드래프트 18라운드로 뽑히기 이전 알링턴 고등학교의 투수였다.
"제 꿈이 이뤄졌어요. " 마틴이 말했다. "놀란 라이언을 제 우상으로 여기면서 레인저스를 쭉 보며 자라왔어요. 오늘 도로를 달리며 구장을 보는 건....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죠."
마틴은 그가 처음 드래프트 되었을 때 타이거즈와 계약하지 않았다. 대신, 텍사스 Waco에 있는 McLennan Junior College에 들어갔고, 2005년 드래프트 때 로키스에 의해 선택되어졌다. 하지만 다시 그는 사인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2학년을 위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University of Texas나 Oklahoma로 전학할 계획이었다.
허나, 마틴은 어깨 관절 와순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며 추락했고, 메이저리그의 꿈이 사라져버렸다. Dr. Keith Meister에게 수술을 받았지만 그 이후 독립리그팀 Fort Worth Cats에서의 트라이아웃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그는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 다음 3년을 트럭과 창고에서 보내게 되었던 것이다. 선수로서의 영광은 slow-pitch softball로 국한되었다.
"흐릿해졌어요. 확실히 회오리바람이 제가 갔던 모든 길들을 덮친 것이었죠." 마틴이 발했다. "그건 명백히 사소한 경험일 뿐이에요... 그것이 오늘 내가 있는 이 자리에 이르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인 제 의지의 큰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항상 제 마음 뒤에 어떤 무언가가 있었어요... 저와 같이 야구했던 그들의 MLB 데뷔를 보며, 전 저들과 바로 저 곳에 함께 있었던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이 어깨가 건강해질 수 있고, 그 안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낸다면 충분히 좋아질 걸 알고 있었거든요.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 같았어요."
마틴은 에어혹스에서 13게임동안 4-0, 1.96 ERA를 기록했다. 인캐비글리아는 레드삭스 스카우트 Jaymie Bane(제이미 베인)에게 마틴을 봐달라고 설득했다. 레드삭스는 그에 합의했지만 마틴은 2011년 봄에 플로리다에 있는 Fort Myers에 갈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그의 아버지와 Matt Martin은 그것을 위해 비용을 지불했고, 트라이아웃은 레드삭스 스프링 트레이닝 시설에서 Bane을 비롯한 구단의 공식적인 관찰 속에서 이뤄졌다.
"안절부절 못했었죠." 마틴이 말했다. "프런트들 모두 케이지 뒤에 서서 제가 던지는 걸 봤으니까요."
마틴이 던진 볼들이 스피드건에 93~94마일로 찍혔을 때 레드삭스는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볼을 던질 때 스피드가 다가 아니었어요." 베인은 블리처 리포트의 스콧 밀러에게 말했다. "그가 얼마나 쉽게 공을 던지고 있는지와 그(볼을 던지는) 각도가 그가 만들어낸 것인지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무 위에 서 있다는 것조차 몰랐어요. 고무 옆 3루 쪽으로 가게 했고, 그의 각도는 좀 더 나아졌죠."
레드삭스는 그와 계약했으나, 확실한 약속은 하지 않았다. 베인은 마틴이 빠르게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걸 분명히 밝혔다.
마틴은 해냈다. 그는 텍사스 팜 시스템을 넘어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3년을 있었고, 그 후 2013년 12월 18일 로키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그는 4월 26일 메이저리그 데뷔를 만들어냈고, 양키스로 팔리기 전 로키스를 위해 16게임을 던졌다.
2015년에는 양키스에서 24게임을 던졌다. 콜로라도와 양키스에서 한 일은 그가 트리플A와 메이저 사이를 오간만큼 일관성없는 결과를 빚어냈다. 2년 넘는 동안, 그는 6.19 ERA와 함께 첫 승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양키스는 그를 방출했다. 그것은 마틴이 일본에 가서 니혼햄 파이터스를 위해 던지기로 결정한 때였다.
"제가 처음 그곳으로 건너갔을 때,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마틴이 말했다. "일종의 적응 기간이었어요. 하지만 전 이것이 마지막 지푸라기인 것을 알았고, '넌 무언가를 알아내야만 해' 라고 생각했어요."
마틴은 일본에서 대단한 2시즌을 보냈다. 그는 빠른 카운트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넣는 법을 배웠고, 그러고 나서 타자들을 아웃시키는 방법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2시즌 합쳐서 91개의 삼진을 잡고, 13볼넷을 내줬으며 88이닝 동안 1.12 ERA와 0.69 WHIP를 기록했다.
레인저스는 그와 2년 계약으로 사인했으나 불펜 예비용(뎁쓰용) 투수는 아니다. 구단은 2년 전 일본에서 돌아온 토니 바넷처럼 그가 임팩트를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전 메이저리그 레벨에서 아주 잘하지 못했을 때의 그 과거를 돌아보기 싶지 않습니다." 마틴이 말했다. "하지만 풀시즌 기회를 얻었다면 잘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었고, 더 많은 걸 배웠어요. 일본(경력)이 (제게) 큰 도움이 된 이유입니다. 2년동안 그곳은(그곳으로 넘어간 건) 내게 침착하게 게임 치르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이곳을 넘는 성공을 위해 나를 준비하게 해줬습니다.
마틴은 집으로 돌아와 트럭을 몰지 않고 있다. 그의 꿈은 알링턴에서 살아났다.
덧) 오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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