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술자리를 만들었고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고나서 지금에서야 비로소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스스로 달라진 건 별로 없으며 그때나 지금이나 이 책 제목만 보면 마음이 아파오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자꾸 눈에 밟혀 한장한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한일 우호의 해" 를 맞아 냉정과 열정사이로 유명한 일본의 츠지 히토나리와 우리나라의 공지영씨가 1년동안 공동으로 집필해서 쓴 책이다. 츠지는 남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공지영은 여자 주인공 입장에서 쓴 것으로 같은 제목으로 두 권이 발간되었다.
난 츠지 히토나리가 쓴 남자주인공 버전을 보았다.
아오키 준고(필명 : 사사에 히카리) 라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가 자신의 책을 한국에 내기 위해 한국에 방한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준고는 공항에서 애틋하게 사랑했고 잊지 못했던 최홍이라는 한국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작가와 통역가로 우연히 7년만에 다시 만나면서 과와 현재를 넘나들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책의 소재는 다소 진부한 국경없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또는 많이 심각하지도 않았다. 옛날 일본과 우리나라의 역사적 잔재와 가치관을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과 같은 입장에 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이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죠. 상대방의 마음을 제멋대로 꾸미는 게 보통이에요.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해를 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홍이도 준고도 그렇게 사랑했으면서도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건 저 입장의 차이였을 것이다.
홍이는 준고의 힘들고 바쁜 일상에 지쳐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외로워진 데다가 어쩔 수 없는 일상이라 해도 당연히 이해해줘야 한다는 그 이기심에 사과조차 하지않는 준고가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으로 투영되었던 것 같았다. 마치 일본인 선조들의 침략을 일본 정부가 한국에 절대 사과하지 않는 것처럼...
준고는 그런 자신의 실수를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고, 왜 홍이가 그렇게 공원을 달려야만 했는지 나중에서야 자신도 달리면서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 나중에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후회한다고 하더라니...
난 외로움과 싸우는 홍이를 보며 내 모습이 오버랩되는 걸 느꼈다. 사실 그도 정말 많이 바쁘고 상황도 상황인지라 나를 많이 외롭게 만들었었으니까... 저 외로움이 어떤건지 아주 잘 알 것 같다.
나도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뭐 그걸 원망하는 것은 아니고 저 외로움 너무 힘들다는 거 아니까 마음이 아플 뿐...
나도 이별 후에 정말 많이 후회한 것이 있었다. 홍이는 자신이 한 첫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항상 어렵게 사는 준고를 배불리 먹였고, 시간될때마다 못하는 요리솜씨로 한국음식을 만들어서 먹이는 모습, 또 준고 아버지께도 잘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는 그에게 해준 것이 별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물론 물질적인 것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도 몸에 좋은 음식 해먹이고 싶었고, 좋은 곳에 가서 배불리 먹이고 싶었고, 특별한 날에는 내 정성으로 준비한 선물로 그를 깜짝 놀라게 만들고 싶었는데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버렸으니 이게 가장 후회스럽다.
내가 과연 그를 그의 입장에서 왜곡없이 이해했는지 그것도 의문스럽고 미안할 뿐이다. 하긴 그도 마찬가지겠지만...
준고는 자신과 홍이의 이야기를 "한국의 친구, 일본의 친구" 라는 책으로 썼고, 이 책이 유명해지고 한국에 전해져서 홍이가 보기를 바랬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을 진심으로 전하고 싶었다. 정말 하늘의 뜻인지 그렇게 됐고, 결국 한국에서 7년만에 홍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게 운명이겠거니 싶다.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던 건 해피엔딩이라서 그런 것 같다.
난 해피엔딩이 좋다. 실상 사람들이 사는 이 각박한 세상에는 해피엔딩은 정말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이런 작품 속에서라도 행복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물론 대리만족은 대리만족일 뿐이지만.
준고는 홍이를 다시 만나서 오해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이야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만나는 것 자체도 어긋나서 이대로 끝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결국은 역시 소설같이(소설이지만) 준고가 귀국하는 날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한마디의 말보다 더 중요한 한가지의 행동으로...
준고는 홍이를 마지막으로 어떻게든 만나려고 홍이가 사는 곳으로 무작정 콜택시를 불러 찾아갔고, 거기서 그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녀는 항상
조깅을 하니까 그 코스로 나타날 것이었고...
그렇게 그녀가 나타났고, 준고는 외투를 벗어 미리 입어둔 운동복과 운동화를 신은 모습으로 그녀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그녀와 마주칠 수 있게끔 반대 방향부터 차근차근 달려나갔다. 준고도 홍이와 헤어진 이후 매일매일 15km를 뛰었고 그렇게 홍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깨닫게 되면서 그렇게 홍이를 만났고, 같이 달렸다.
홍이는 계속 자신과 겨루면서도 힘든 거리를 같이 한참동안 뛰는 모습을 보면서 준고의 이야기가 진심임을 깨닫고 용서하게 되었던 것 같았고 그렇게 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이 책을 덮고 나서 한동안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었고 사무실을 조용히 나가서 복도 끝에서 조용히 흐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해피 엔딩이었는데 왜 눈물이 멈추지 않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인연인 사람들은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데 그랬으면 좋겠지만 이건 소설 속의 이야기일뿐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더더군다나 인연이 아닐지도 모르니......
이렇게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이란 책과 함께 이틀 중 일부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며칠 후에는 아마 공지영씨가 쓴 여자주인공 버전과 함께 또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 책은 사랑에 한번이라도 가슴아파본 적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책인 듯 하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라면 더 그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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