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3 작성]
무라카미 하루키... 워낙 유명한 작가이긴 하지만 1Q84를 읽기 전까지 난 그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웬지 모르게 저자 이름부터 느껴지는 기운이 대중적이지는 않을 것 같았고, 책 두께까지도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 난다.
1Q84 역시 책의 두께는 상당했지만 제목에서부터 뭔가 내 시선을 끌기도 했고, 주위에서도 괜찮다는 평이 있어 무심코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던 것이다.
이상하게 일본 소설은 2명 이상 각각 다른 주인공의 시각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는 경향이 있고,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처음에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진행되면 될수록 관련이 깊다는 정도...
때는 1984년의 어느 날... 아오마메는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쪽으로 가게 되는데 그 고속도로의 정체는 상당히 심각한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아오마메는 클래식을 많이 듣지 않는 편인데 자신이 잘 아는 음악이 나온다는 자체에서도 신기한 느낌이었고, 택시 안의 스테레오 장비, 택시 차체까지 일반 택시와는 달리 상당히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택시 기사조차도......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서부터 선구의 교주가 손을 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고속도로의 정체 때문에 택시 기사는 아오마메에게 고속도로 옆 쪽의 통로를 알려주게 되고, 그녀가 그 제안에 응하게 되면서 현재까지의 삶과는 조금씩 미묘하게 달라지는 1Q84의 시대에 들어오게 되었다.
덴고는 입시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고 있는 예비소설가였다. 신인왕 공모를 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편집자에게 후카다 에리코라는 여고생이 쓴 '공기번데기'라는 소설을 리라이팅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공기번데기'라는 작품의 상상력과 소재는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문장력 자체가 현 심사위원들이 전혀 보지 않고 넘어갈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러한 경향을 잘 알고 있는 편집자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출판계에 뭔가 충격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사안이 널리 알려지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는 리라이팅 작업을 덴고에게 부탁하기에 이르렀으며 덴고 역시도 그 이야기에 끌리는 마음을 마다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1Q84의 시대가 시작이 되는 듯 했다. 그 날 이후 아오마메의 눈에는 하늘의 달이 2개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본 직업은 마셜 아츠를 가르치는 휘트니스 센터의 강사... 이 직업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대단히 성공하였으며 여성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는 꼼꼼하고 완벽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더불어 아오마메는 그 여인이 돌봐주고 있었던 여성들에게 심한 가해를 입힌 암적인 존재들을 다른 세상으로 옮겨주는 즉, 킬러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말이다.
덴고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면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후카에리를 직접 보게 되었고, 그녀의 보호자이자 유명한 학자인 에비스노 선생을 만나게 되면서 후카에리의 출생과 그녀의 부모, 성장환경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후카에리, 에비스노 선생 모두 덴고의 리라이팅 작업에 동의하게 되는데 덴고는 작품에 대한 순수한 열정 때문에 그 작업을 하게 되었지만 에비스노 선생은 후카에리가 도망칠 정도로 그녀의 부모가 몸담고 있는 '선구' 라는 코뮌에서 무슨 일이 생겼던 건지 알고 싶었고, 그들의 신변조차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작업을 수락하게 된 것이었다.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자연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던 코뮌 집단이 평화를 추구하는 '선구'와 혁명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을 시도하는 '여명' 으로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여명이 경찰들과 대치를 하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고, '선구'는 후에 종교집단으로 변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전과는 달리 외부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으로 변모하게 되고, 그 와중에 후카에리가 탈출하게 된 것이다.
두 개의 전혀 상관없는 스토리들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관련성이 짙어지고, 전혀 관계가 없을 거 같던 덴고와 아오마메... 그리고 그들의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매우 흥미있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 코뮌 집단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 교주가 어떻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상실시켜버렸는지 그를 따르는 신도들은 어떻게 그를 절대적으로 신임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건 그닥 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리틀 피플이 사람들을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이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건지 그 결과만 나타날 뿐 과정은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도 아마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생각해야 하는 거겠지......
아오마메와 덴고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말 한마디 제대로 한 적은 없지만 서로 호감이 있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잊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구체적으로 행방을 찾아보겠다 한 건 없었기에 전혀 만날 수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이 1Q84의 시대에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만날 수 있었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의 사랑을 표현하였다.
내 입장으로는 그 방식들이 전혀 맘에 들지 않을 뿐더러 참 마음이 아프기도 했는데 범상치 않은 인연들은 현실속에서도 비슷한 뉘앙스지만 다른 방식으로 서로 만나거나 빗겨나가기도 하니 환상스러우면서도 어찌보면 현실적인 결론일 수도 있겠거니 싶다.
그만큼 결론조차도 참 모호할 수 밖에 없는 1Q84였지만 이러한 면이 나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는 듯 하다. 들어올 수는 있어도 다시 나갈 수 없는 1Q84의 시대를 아오마메는 그렇게 빠져나갔을까... 아니면 단순히 죽음에 이른 것일까... 또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그 시대에 남았을까...
정황상은 선구의 교주 말처럼 덴고를 위해 죽음과 함께 그 시대를 빠져나갔다는 것이 맞겠지만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덴고는 아버지 병실에서 공기번데기를 발견하였고, 그 안에서 깨어난 10살의 아오마메를 만난 후 다시 그녀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을까... 아니면 그 만남 이후로 마음속으로만 그녀를 찾아가고 있을까... 또는 그 날 이후 후카에리와 뭔가 관계를 진전시켜 나갈까...
정황상 덴고는 계속하여 아오마메의 행방을 수소문해나갈 것이지만 이 것 역시 확실치 않다.
확실한 건 두 사람은 10살때부터 다른 누구를 사랑한 적도 없이 서로를 사랑해 왔다는 것 정도....
희극인지 비극인지 확실치 않는 결론때문에 주위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 작품에 대해 안 좋은 평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이런 모호한 결론은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성적인 묘사도 상당히 많은 편인데 이 조차도 전혀 선호하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주는 복잡함과 모호함,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그 매력은 과소평가할 수 없을 듯 싶다. 좋다 나쁘다라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결론도 마치 이 작품의 결론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부인할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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