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en's Diary/Diary Book

[4.5 (4 years and a half of one year)] 미르가 떠난 후 내 삶들... (My life after Mir passed away...)

♥Elen_Mir 2020. 7. 27. 15:15

 

 

 

19살이 되기 이전에는 그저 학교-집의 생활을 무미건조하게 반복하다가 야구를 알게 되면서 내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것이 다소 지루했던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준 첫번째 순간이었고, 그 이후 내 삶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미르가 내 곁에 오게 된 2003년 12월 21일이 회의감 가득했던 내 인생을 희망의 순간으로 바꾸어준 중차대한 순간이 되었고, 또한 미르는 그렇게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미르와 함께 13년 정도를 살면서 사소하지만 다양한 꿈들을 꾸며 내 삶에 충실해지고 있었고, 감히 달성하기 쉽지 않은 버킷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르가 내 곁을 떠나고 난 뒤, 난 다시 길을 잃기 시작했다. 미르가 질병의 고통 안에서 힘들어하는 걸 지켜보며 그것이 내 안에 트라우마처럼 자리잡았고, 벌써 4년이나 지난 지금, 여전히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어디가 조금만 안 좋으면 그 고통이 너무나 크게 다가오고 있어서 어떻게 하면 가장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조만간 유언장도 미리 써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어차피 유언장이야 살아있을 때 쓰는 것이니 미리 써놓고 나중에 조금씩 수정해도 되니 말이다.

 

 

게다가 이제는 예전처럼 야구가 재미있게 느껴지지 않는 것 같고, 원래부터 좋아하지 않기도 했지만 현재 하는 일도 지긋지긋하고, 단 하나 남은 것이 낯선 세상을 돌아다니는 여행의 즐거움인 것 같다. 근데 올해는 그 여행도 할 수 없다. 맘대로 일을 그만둘 수도 없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일을 좋아하진 않았어도 저 목표나 꿈들 때문에 열심히 일하며 야구를 즐기거나, 여행을 다니곤 했었는데 지금은 이도저도 안되니 그 우울감이 깊어지고 있다. 바이러스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언제부턴가 내 인생이 숨 막히고 답답하다.

 

 

사실 이걸 조금이라도 해소해보고자 낯선 지역에 혼자 떨어져서 살아보고 싶어 제주도에 있는 호텔에서 일한 적도 있었고, 지금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한적하고 공기 좋은 중소 도시나 시골에서 살면서 나름대로의 여유를 즐겨보고 싶었는데 타의적으로 서울에서 일하고 있고, 회사의 경영 상황이 바뀌어서 계속하여 서울에서 일해야 한다. 집을 살 생각도 없지만 부동산값 상승 때문에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집에서 살 수도 없다.

 

또 이렇게 나의 소소한 작은 꿈은 날아가버려서 그런지, 나는 뭘 해도 안 되는 인간인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외국에서 일할 기회가 되면 정말 일하고 싶은데, 내 영어 실력도 너무 부족하고(지쳤는지 이제 영어 공부도 잘 안된다), 나이는 들어가며 그 길도 너무나 좁아서 차선책으로 수도권 외의 다른 지방에 내려가길 원했던 것인데 정말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아무 것도 없는 듯 하다. 이직도 쉽지 않은 게 지금의 연봉이나 근무 조건과 비슷한 곳을 지방에서는 찾기 어렵고, 찾는다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물론 이 어려운 시국에 여전히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이만큼 참아내고 있는 것이지만 내가 원하는 삶이 계속해서 멀어져서 그런지 착잡하고 쓸쓸한 기분이 든다. 이제는 전혀 행복하지가 않다.

 

 

 

아마도 이 여러가지 악조건들 때문에 미르가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미르가 현재도 내 곁에 있었다면, 이 어려움을 이겨낼 힘이 있었을텐데 지금은 내 곁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가족이 있다 해도 소울 메이트처럼 내 영혼까지 나눈 존재가 꼭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특히나, 나에겐 그 존재가 현재까지의 내 모든 삶을 통틀어봐도 미르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른 불쌍한 아이를 내가 거둔다 할지라도 그 아이가 또한 미르는 아니기 때문에 이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 사람에게 육신은 껍데기일 뿐이다. 영혼이 배부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살아나가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저 이렇게 가끔 쏟아내고 나면 약간은 후련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된다. 앞이 보이진 않을지라도 그 원하는 삶,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고민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문제도 많지만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저 내가 이 나라에 맞지 않는 가치관이나 행동 방식, 관념들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외로움보다는 모험심, 도전이 나에게 중요한 부분인 것이 그것이 나에게 쾌감 혹은 행복감을 주는 가장 본연의 가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것이고,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그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내 행복을 찾는 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