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Escape/마음의 양식

[도서리뷰] 보이지 않는 마왕, 그리고 그를 견제하는 사람들... - 마왕

♥Elen_Mir 2014. 6. 25. 09:39

[2008.11.28 작성]


마왕

저자
이사카 코타로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06-08-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일본 문학평론가들과 편집자들이 뽑은 이사카 코타로의 최고작 《마...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 어두운 밤,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말을 몰고 있다. 그가 아들에게 묻는다.
   "아들아 왜 얼굴을 가리느냐?"   "아버지 보이지 않아요? 관을 쓴 마왕이 있어요."  
   "그건 안개란다."   "아버지 들리지 않아요? 마왕이 무언가 속삭여요."
   "마른 잎의 소리란다. 진정하렴."    "아버지 보이지 않아요? 마왕의 딸이 있어요."
   "보이지만 저건 버드나무란다."    "아버지, 이제 마왕이 나를 붙잡고 있어요."
    아버지가 말을 몰아 집에 도착했을 때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


 이 책의 모티브가 된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의 이야기를 발췌한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마왕을 볼 수 없지만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마왕...
 여기서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주인공 안도의 눈에는 이누카이란 사람을 곱게 보지만은 못하는 까닭이 이 때문이다.

 그 전에 이 소설의 배경을 보면 21세기를 지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이다. 가령 정보의 무분별한 검색과 더불어 누군가가 무언가를 선동하면 그에 따라 대중은 스스로 아무런 자각없이 그냥저냥 휩쓸려가는 그런 획일화된 분위기 말이다. 그래서 정체되어 있으며 또는 너무나 혼란스러운 시대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모호한 문제들과 함께 그런 판단능력마저 상실되어가는 그런 시대...

 가장 흔한 것으로는 마녀 사냥 같은 것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정보를 근거로 해서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임에도 그 정보마저 조작되는 건 어쩌면 인터넷 상에서는 정말로 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안도와 대학친구였던 시마가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다.  현 정권에 대한 지긋지긋함과 미국에 대한 무력함에 대한 반감으로 사람들은 일본 총리로 변화를 꾀할 새로운 인물을 선출하길 원하고, 안도와 시마도 바로 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의 정점이 처음에는 미약하게 시작했던 야당 중 하나인 미래당의 총리 후보자 이누카이였고, 시마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누카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는 반면 안도는 무솔리니 또는 히틀러 등 독재자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확실히 이누카이는 TV 토론에 나와서 정치와 국제관계에 대해 굉장히 명쾌한 해답을 내놓는다. 총리가 되면 5년 안에 경기를 회복시기고, 5년 안에 노후 생활까지 보장하겠다는 발언을 한다. 현 정권 문제점 중의 몇 안건은 점진적으로 없애겠다는 게 아닌 즉각 폐지하겠다는 발언, 미국,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확실한 태도를 하겠다는 발언, 더 나아가 일본 국민들의 안이함과 무의식적인 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등등 자신의 생각을 주저없이 그대로 얘기한다. 
 공중파에서 이쯤하면 지긋지긋한 삶에 체념하고 있는 대중들의 눈에는 정말 매력적인 카드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도는 이런 무대포적이면서도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산된 이 행동과 그의 가치관이 무솔리니와 놀랄만큼 닮아있다고 느끼며 점점 더 두려움을 느끼고, 동생 준야와 그의 여자친구인 시오리에게 그 소소한 이야기까지 모두 털어놓는다.
 동생 준야와 시오리는 형 안도와는 달리 생각을 많이하는 타입이 아니지만 그런 형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어찌보면 참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부류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거 같지만 휩쓸려가지는 않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안도는 시마와 만난 그 시점 그 지하철에서 30미터 반경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말을 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가칭 복화술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그 능력을 이누카이 유세장에서 쓰려고 하면서 죽음의 길에 이른다. 마왕에 의해 싸늘한 시체가 되었던 그 아이처럼... 정확한 사인은 뇌일혈... 후에 이누카이를 암살하려 했던 범인도 그 뇌일혈로 죽었다고 나오는데 이러한 정황을 볼 때 이누카이 주변에도 안도같은 능력자가 있고, 그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뭐 그가 누구일지 망설임없이 예상도 되고... 안도가 자주 가던 카페 '두체' 의 지배인... 그 남자인 듯 싶다.

 두체 지배인은 이누카이를 신봉하던 사람 중 하나이다. 안도 친구였던 시마와는 다르게 일본에 사는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걱정하며 파시즘이든 독재자든 그것을 찾아줄 수만 있으면 또한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자긍심까지 되찾을 수 있다면 된다고 여겼던 거 같다. 그거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그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이누카이는 유세를 하면서 매번 국민들에게 생각하라 생각하라 하고 주문하지만 그는 궁극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과정은 모두 무시하는 그런 독선적인 인간형이다.

 안도가 죽은 후 동생 준야와 이제는 아내가 된 시오리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부부는 형을 그렇게 잃은 후 5년동안 TV나 저널은 근처에 두지도 않고, 거처까지 옮겨가며 철저히 자신들의 삶만을 살고 있다. 5년 후 시오리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이누카이가 총리가 된 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정말 놀랍도록 자신의 공약을 제대로 지켜내고,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어찌보면 결점없이 임기동안 여러 업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누카이 총리에 대해 칭찬하지만 단 한 사람 미츠요는 놀랍도록 안도와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헌법 제 9조를 개정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에 대해 국민투표를 진행하는데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참 존경스럽기도 했다. 가령 국민투표를 시행할 때 다른 보기들을 터무니없는 걸로 만들어서 그것밖에 선택 못하게끔 만든다거나 과반수라는 개념이 투표율이 낮아도 그 투표율의 과반수면 개정된다는 등등..

  반대파들도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에 큰 비중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말 여러가지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준야는 형이 죽은 후 무언가에 당첨될 확률이 높아졌다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시험해 본 결과 1/10의 확률에서는 백전백승이었다. 하지만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그것을 통해 사적으로 이익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분명 나중에는 그 운을 이용하여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들만 잘 살아보겠다는 의도가 아닌 형이 평소에 이야기했고, 미츠요씨가 평소에 이야기했던 비판적인 시각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그러려면 힘을 키워야 하고, 그 힘을 단시간에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은 돈이라는 어찌보면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해답을...^^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뭔지 알아? .... 좀 더 새롭게,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좀 더 많이 손에 넣는 것. 말하자면 정보량이라고 생각해. 정보가 존경으로 이어지는 거지. 이누카이는 엄청나게 머리가 좋은 모양이야. 정보의 질이나 양이 탁월하니까 토론에서
지지 않아. 그게 점점 동경과 신뢰로 변했고, 지지를 받게 된 거지."

 "어쩐지 말이야. 어딘가에 함정이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이누카이는 생각하고 있지만 일반 대중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이누카이는 대단하지만,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은 무서워."

 "무솔리니는 최후에 애인인 클라라와 함께 총살을 당하고, 시체는 광장에 공개되었다는 모양이야........  군중이 시체를 향해 침을 뱉고 매질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시체를 거꾸로 매달게 되었는데 그러자 클라라의 치마가 뒤집혔지........ 군중들은 굉장히 즐거워했대. 죽여준다, 속옷이 훤히 다 보인다, 하며 흥분했겠지. 어느 시대건 그러게 마련이지 남자들이란. 아니 여자들도 그랬겠지. 그런데 그 때 한 사람이 손가락질을 받아가며 사다리를 올라가서 치마를 올려주고 자신의 허리띠로 묶어서 뒤집히지 않도록 해줬대."

 "사실 나는 늘, 최소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사람들이 날뛰고 소란 피우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무섭기도 하고. 하지만 최소한 있지. 뒤집힌 치마 정도는 바로잡아줄 줄 아는, 뭐 그게 무리라면 치마를 바로 잡아주고 싶다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해."


 미츠요가 이야기한 이 마지막 구절이 특히나 더 기억에 남는다. 그러면서 준야와 시오리는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낀다고 했을 때...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과연 나는 제대로 생각하고 비판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때는 휩쓸린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는 않았던 거 같다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면서 말이다...


  "돈 모으고 있지?"  "경마로 돈을 만들고 있지?"    
  "알고 있었어?"
  "싸울 생각이라면, 나도 함께할 거니까."     "다시 말해서, 클라라의 치마를 바로잡을 때는 나도 함께 하자는 말이야."
 "천천히 하면 돼.....  천천히 조금씩, 경마를 해서 돈을 불려나가는 거야. 기다리는 건 힘들지 않아. 일곱 시간이나 기다려도 한 마리의 매도 나타나지 않은 적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타날 때면 아름답지."

 이렇게 시오리는 미츠요의 말처럼 남편과 함께 세상을 향한 싸움을 시작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이 외에도 이야기할 부분이 너무 많은데 시간도 부족하고 공간도 부족하고 참 여러가지로 심란한 과제를 안겨주는 유익한 도서였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아무래도 난 그의 팬이 될 것만 같다.
 책 두께도 얇고, 활자도 큰지라 진도가 술술 넘어간 작품이었지만 마냥 가볍게만 볼 수 없었던 내용들... 가볍게 읽었지만 무거운 돌덩이를 품은 거 같은 큰 과제를 안겨준 작품....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해주고 있는 작품이었다. 근래 읽은 것 중 최고의 작품이었을지도...